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에로스파시알-BAC 콩코드 (문단 편집) === 그 외 === * 역사상 단 둘뿐인 초음속 여객기였다는 상징성 덕분에 콩코드가 다녀간 공항에서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경우가 많다. 대한민국에도 콩코드기가 방문한 적이 있는데, 1976년 11월 9일 극동지역 판매촉진을 목적으로 런던-파리-바레인-싱가포르를 경유해서 '''[[김포공항]]'''에 착륙했었다. 주한 프랑스 대사와 영국대사를 태우고 서해상을 비행한 후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갔다. [[https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76111000329207011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76-11-10&officeId=00032&pageNo=7&printNo=9576&publishType=00020|#]] [[박근혜]] 전 대통령도 당시 대통령 영애 자격으로 방문했었다고. [[대한항공]]과 구매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라는 관계자의 말이 신문에 실렸던 것으로 보아 대한항공도 구매할 의향이 약간은 있었던 듯.[*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보잉 747 1기가 약 100억 원 정도 했는데 콩코드는 350억으로 747 3.5대값과 맞먹었으므로 현실적으로 실행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. 게다가 당시에는 내국인의 출국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항공에게 당장 급한건 콩코드가 아니라 화물기였다.] 싱가포르 - 김포 구간은 초음속으로 비행했는데, '''불과 2시간 50분 만에 주파했다.''' 일반적인 제트 여객기로는 6시간 정도 소요된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일이었을 것이다. 한국에 온 콩코드는 F-BTSC(203)으로 [[에어 프랑스 4590편 추락 사고]]로 인해 파괴되었다. * 1992년 '''[[인천국제공항]]''' 건설 당시 콩코드의 이착륙도 대비해서 건설하였다.[* 활주로의 길이와 폭이 넓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거대했던 항공기인 [[An-225]]도 무리없이 착륙이 가능했었다.] 1992년 대한뉴스를 보면 인천-JFK간 4시간 대가 가능한 초음속기가 취항할 수 있게 건설한다는 대목이 있기 때문. 하지만 정작 인천공항이 개항한 후로 콩코드가 운행하지 않게 되면서... 하지만 [[붐 오버추어]]가 인천에 취항한다면 실제로 소음피해가 많이 적어질 것이다.[* 일단 유나이티드 항공이 기체만 제대로 완성된다면 [[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|LA]]-[[나리타 국제공항|도쿄]] 노선에 투입하기로 발표하였기 때문에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과 합병하면 1990년대 수준의 한국허브를 개설할 가능성도 있고, 2019년부터 서비스 고급화를 하며 재기를 노리는 유나이티드 항공이 오버추어로도 운항을 할 가능성은 높다.] * [[콩고민주공화국]](당시에는 자이르)의 독재자였던 [[모부투 세세 세코]]는 고향인 그바돌리테(Gbadolite)에 있는 그바돌리테 국제공항에 [[에어 프랑스]]의 콩코드를 전세내어 해외 순방과 쇼핑을 할 때에 애용했으며, 심지어 1985년에는 그바돌리테 근처의 카웰레(Kawele)에 있는 초호화 별장에서 생일 파티를 한다며 프랑스의 유명 파티시에가 만든 생일 케이크를 [[배달]]해 먹겠다고(...) 콩코드를 전세내기도 했다.[* 참고로 모부투 세세 세코는 당대 아프리카 국가 중 최상급의 원조를 받으면서도 [[도둑정치]]라는 말이 붙을 정도의 극도의 부정부패로 [[자이르]]를 세계 최악의 최빈국으로 거덜낸 지도자였다.] * 프랑스에서는 콩코드를 프랑스제 여객기로 여기고, 영국에서는 콩코드를 영국제 여객기로 여긴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